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중남미 다른 국가들은 브라질과 코스타리카의 성공을 보며 너도나도 커피 생산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세기 중반에는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가, 제2차 커피붐이 일던 시기에는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도 가세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하지만 바로 이 가격 폭락이 커피붐을 더욱 더 가속화시겼다.
이와 때를 같이해 이탈리아와 독일, 일본 등에서 신천지를 꿈꾸는 이민자들이 중남미로 건너가 커피생산을 지탱하는 노동력이 되었다.
특히 독일계 이민자들이 농원주와 수출업자로 성장해 고품질 커피콩을 본국으로 우선적으로 보내면서 당시 최고의 커피가 독일로 모였던 것이다.
한편 카리브 해의 국가들은 최초의 독립을 이룬 아이티에 점령되었던 도미니카를 제외하면 19세기 후반까지 줄곧 유럽의 식민 지배 하에 머물렀다.그리고 이 점이 커피 생산을 안정시켜 19세기 중반 개발된 수세식 정제법과 함께 순조로운 커피 생산을 가능케 했다.
그 중에서도 스페인령 쿠바는 아이티 독립 당시 도망쳐 아주했던 사람들에 의해 생산이 확대되었고 수출이 편한 미국의 커피 수요가 증가하면서 1843년에는 브라질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큰 생산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868년 이후 쿠바독립전쟁이 발발하면서 수출량이 급감해, 제 2차 커피붐이 일었을 때에는 다른 국가들보다 뒤처지고 말았다.
쿠바와 함께 스페인령에 속했던 프에르토리코 역시 생산량 자체는 적었지만, 그곳에서 커피는 주요산업중 하나였다. 그런가 하면 영국령 자메이카는 18세기 후반 이후 각광받은 ‘블루마운틴’의 원조 커피를 제배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커피가 제2차 커피붐 당시 최고급 커피로 분류되면서 런던 시장에서 모카 다음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